멘토에게 삶의 길을 묻다- 이동휘 목사
1. 예수님 잘 믿읍시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원로로 생존하실 때 후배목사들이 한수 가르침을 받기위해 지침이 되는 교훈의 말씀을 여쭘에 "목사님들! 예수님 잘 믿으시오" 란 말씀을 내리셨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밟는 길이 예수님 잘 믿는 것이라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는 자세가 우선 똑 바로 세워졌어야 했습니다. 자기를 버리는 결단, 자기를 해체시키는 작업 없이 옛사람과 욕정 그대로를 간직 한 채 성직자란 너울만 그대로 쓴 것이었나 봅니다. 죽고 져 하는 자는 살고, 살고 져 하는 자는 죽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진리라고 강단에서 그렇게도 외쳤는데도 말입니다.
기독교인도, 성직자도, 교회도, 기독교기관도 변칙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변질된 신앙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덧칠한 위선을 껍질 벗기기에 벅찬 수준에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진리말씀을 회복하야만 하기에 오늘 모인 것 같습니다. 경청할 예수님의 말씀을 또 하나 전한다면 멘토를 때 묻은 성인에게 묻지 말고 어린아이에게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대단히 무서운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의 순결성을 되찾으면 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천국 문을 닫아버리시겠다는 노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도 성직자의 타락이 가장 직접적이고 대량의 영향을 끼친다는 차원에서 성직자는 입이 수 천 개 있어도 입을 다물 때인 것 같습니다. 설익은 뱀이 더 무섭다는 말이 민속대화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 아니라 한때 실신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육의 사람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우리 같은 때 묻은 기존 종교인이 어떤 말을 할지라도 무슨 처방전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처음 영접 했을 때의 초심을 품고 납죽 엎드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어린아이의 순결함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진짜 예수쟁이들이 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잘 믿겠습니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수준이상의 물질과 명예를 과감히 사양하는 목회자가 되야 합니다.
지도자, 믿음의 아버지, 스승, 주의 종이란 목사에 대한 존경심은 매우 값진 대우이고 흐뭇한 한국교회의 관습입니다. 부흥사들의 뜨거운 강조(?)로 세계에서 가장 대접 잘 받는 한국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자 장로나 윤택한 성도가 진심어린 접대로 화려한 주택이나 차량을 정말 선의로 기증 할지라도 도에 지나친 대접은 정중히 그리고 절대 사양해야 합니다. 이유는 네 가지입니다.
* 대 스승인 예수님께서 청빈하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눅6:20)
* 교인이나 동족가운데 유족 하지 못한 서민들이 아직도 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보다 많은 서민들 편에 섰을 때 부자들도 양심의 찔림을 받고 오히려 존경 할 것 입니다. 한편 한국의 많은 교회가 물질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미 자립 내지 소형 교회라는 점입니다. 그들의 안타까움을 잊으면 도리가 아닙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계급을 대형교회 목사들이 만들면 큰 악입니다.
* 세상에서 상을 받으면 하늘나라 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야 하늘상이 크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칭찬 들었으므로 자기상을 이미 다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진기한 천국에서의 상을 기대하며 권리행사를 접었습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9:18)
* 한국인의 가치관 가운데 성직자가 호화롭게 사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더 많이 구원하기위해서는 작은 방애거리와 비난도 치워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10:23) 란 말씀을 바울사도와 견주어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옳은 것일지라도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포기하겠다는 바울성자의 하나님중심, 복음중심의 생활태도입니다. 한편 자기탐욕으로 지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신사회가 대형교회목사에 대한 집중 공격을 퍼 붓는 이유를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들은 성직자가 사치스럽게 사는 것에 대해 계속 쓴 소리를 합니다. 성직자의 생활이 고급화 될수록 한국기독교의 갈 길은 점점 험난해 질 것입니다.
♣ 명예를 사랑하는 지도자는 모두 타락합니다.
* 명예를 거절해야 합니다.
가짜박사학위 소지자가 목사가 수위 급에 올랐다는 비통함을 가집니다.
교회직분이 마치계급처럼 비추이고 있습니다.
* 출세 목표가 총회장과 감독이 된 타락입니다. 장 자리를 사양해야 합니다.
감리교목사의 탄식을 들었습니다. 40세에 감리사 우상, 50세에 감독우상, 60세에 감독 회장의 우상에 묶여있다는 것입니다. 몇 년째 끌었던 감독회장자리가 법원싸움으로까지 가면서 한국교회를 우울하게 하였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싸움문제. 장로교의 총회장 선거 때 마다 금품수수의 치욕 상들이 도무지 근절되지를 않습니다. 예수교장로회 예장 선교부에서 일부실시하고 있는 제비뽑기가 확대 되지가 않습니다. 이집트 콥틱 교회가 지금도 교황을 선출할 때 제비뽑기 전통을 순결하게 보존하고 있음을 간절한 마음으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세차게 밀어 붙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노욕의 경계
다윗이나 솔로몬, 히스기야, 요시아, 웃시야 모두 청렴정직 했었는데 늙어서는 거의 잘못되었습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세 사람의 죽은 자를 살릴 때 모두 젊은이들이었다는 것에 신비함을 가집니다. 야이로의 열두 살 된 외동딸(막5:42), 나인 성 과부의 아들 청년(눅7:14), 나사로(요11:43. 결혼 전 삼남매로 추측 된다) 영적인 뜻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젊은 신앙만을 원하신다는 뜻일까요. 노인 정신은 싫으시다는 뜻일까요. 늙은이부터 재앙을 선언하심에도 경고를 받습니다.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 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 하더라"(겔9:6) 나이 많은 우리들이 더 더욱 통곡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영원한 청년으로 남기위해 예수님께서는 33세만 사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보다 나이가 더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영적이고 정신적 나이입니다. 나는 언제나 서른셋이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부흥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절규는 영원한 그리스도인들의 호소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한국뿐 아니라 지구촌 온 누리에 오순절의 대사건이 폭발 되도록, 1907년의 평양의 부흥처럼 다시 한국강토에 불이 떨어지도록 목메어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회개의 영이 소성됩니다. 북한이 구원받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에 복음의 고압전류가 흐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대륙에 대 부흥 경험을 골고루 주셨습니다. 유럽에도 눈물겨운 성령의 강풍이 불었습니다. 그 폭풍! 다시 주시라 애원해야 하겠습니다.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 어느 곳이나 성령의 강풍은 불기 마련입니다. 기독교의 위축당함과 비난의 화살에도 결코 겁먹지 말고, 이러한 부끄러움에도 불고하고, 긍휼하신 하나님의 옷소매를 꽉 붙잡고 오순절의 그 바람처럼 ! 그 불처럼! 육 대륙을 불사르도록 그 명제를 결코 놓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뒤집기 한판 승부로 여섯 대륙을 결판내야 할 것입니다.
주여! 이 나라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주여 지구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4. 선교하는 교회가 실천 대안입니다.
사도행전 1장8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교원리요 승천하시기전 마지막 말씀이요 유언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위탁하신다는 차원에서 마태복음 28장과 함께 대 위임의 말씀입니다. 이제 교회는 선교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서 선교출발을 하므로 교회의 빛나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 순서적이 아니고 동시적 명령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의 문장은 과..과..로 이어집니다. 헬라어 카이..카이로 되었습니다. 네 군데를 동시에 하라는 현재명령입니다. "오늘은 서울, 내일은 세계로!" 란 구호는 성서적이 아닙니다. 필자가 전주 안디옥교회를 개척하면서 표어를 사도행전 1장8절로 정했습니다. 개척 첫날교회주보 1면에 표어를 기록하고 매주일 주보에도 23년간 기록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전주와 전북) 온 유다와(한국) 사마리아와(북한과 특수지역) 땅 끝(세계)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경을 가감 한 것이 아니고 해석한 것입니다. 내 선교목회는 네 줄기에 따라 네 곳 선교를 했습니다. 우리 지역인 예루살렘선교, 나라개념인 유대선교,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뜻에서 소외된 자를 돌보는 사마리아 선교, 세계라는 땅 끝 선교로 정했습니다. 초기에는 교세가 약하니까 작게 했고 지금은 교세가 크니까 많이 할 수 있었고 하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네 곳 선교를 동시에 하려면 적어도 교세가 500명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여 5백 명 될 때까지는 우리지역 예루살렘 선교만 하리라 한다면 이런 뜻입니다. 5백 명 될 때까지는 예수님 명령 ¼만 순종 하겠다 즉 ¾은 거절 하겠다는 뜻입니다. 돈으로 선교 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도 다 할 수 있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성령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전도 해외선교란 단어는 사람들이 편리상 만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곳 선교를 전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 교회를 선교체제로 운영했습니다.
① 기관을 자립시켰습니다. 주일하교,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찬양대, 유치부까지 자체 운영토록 했습니다. 자기기관 예배드릴 때 나온 헌금으로만 운영토록하고 교회 지원이 없었습니다. 개척 전에도 20여 년 간 일반 목회를 했었을 때는 일 년 교회 예산을 세워 모든 기관에 지원하고 했지만, 자립할 때가 훨씬 교회성장이 빨랐고 교회가 참신하게 사회에 큰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② 교회재정의 70%정도를 선교와 구제로 사용 했습니다(십일조. 기관에서 드리는 선교 비. 개인이 바치는 선교 비 세 가지가 선교 비임). 나머지30%중 20%는 대지구입과 교육관 건축 등의 건축비이고 교회운영비는 10%로 감당 했습니다. 교회는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선교를 위해 신축성 있게 사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③ 남녀 전도회(신도회, 선교회)를 세계의 모든 나라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 선교회(1948.5-8월생. 여) 브라질선교회(1963.7-12월생. 남) 현재 176개의선교회가 있고 기도기관은 현재 220개 나라로 세계 220개 나라를 위한 기도 팀이 되었습니다.
④ 해외선교위원회를 조직하여 선교의 최종의결 기관으로 집행합니다.
⑤ 주일학교는 4년마다 선교교재로 분반공부를 실시합니다(유치부에서 고등부까지).
⑥ 선교사로 헌신한 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킵니다.
+선교 헌신자모임(청년대학 및 일반) +기드온(고등부) +바나바(중등부) +디모데클럽(초등부) +폴키즈 클럽(유년부)
⑦ 교회에서 수고한분들에 대한 보답으로 크리스마스에 선물하는 일이나, 대회나 어떤 행사의 상을 모두 없앴습니다.
⑧ 크리스마스의 주일학교상도 어른들이 먹는 떡 한 봉지 주는 것으로 대치하고 상을 없앴습니다.
⑨ 교회관리인도 두지 않고 교인 모두가 관리인이 되어 교회당을 청소하고 보살핍니다.
⑩ 하나님의 재산(헌금)으로 군것질 말자는 구호로 상과 먹을 것을 헌금에서 주지 않습니다.
⑪ 우리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불편하게 삽시다: 우리는 모두 선교사요 전도사요 관리인이다: 란 구호를 많이 외쳤습니다.
⑫ 아직도 콘셋트 건물에서(비행기 격납고) 예배드리며 절약 생활합니다.
⑬ 결혼식 축 품은 직분 구별 없이 일률적으로 예배 상(만 오 천원치의 값)으로 통일했습니다.(축 금은 없음)
⑭ 교인운송차량이 없습니다. 사무용 봉고차만 몇 대 있을 뿐입니다.
⑮ 교회체제를 선교 지향적 교회로 전환 했습니다.
*사도적 교회로-사도행전의 교회로 회복 되어 뜨거움으로 복음 전하는 일에 우선을 삼았습니다.
*반문화적 교회로-선교사가 낯 설은 타 문화권에서 문화충격과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파송이나 후원하는 어머니교회도 문화생활을 다 누리면 어머니심정이 아니라 생각되어 반문화적(불편하게 사는) 교회로 살 것을 강조 했습니다.
*전투적 교회로-선교는 사탄과의 영적 전투이기에 유람선이 아닌 군함이어야 합니다. 교회 자체가 재미로움에 빠지면 바로 그 때가 변질된 길을 걷기 때문에 평신도 모두가 일군으로 충성토록 했습니다. 따라서 부교역자수가 다른 교회에 비해 적은편입니다.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목회자, 선교사 그리고 평신도 모두 세계를 책임지는 사명자여야 합니다." 나는 선교사다!!" 줄곧 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