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옥한흠 목사님과는 순수했던 20대 초반에 만나서 지난 9월 2일 소천하시기까지 35년 동안 영적인 스승과 아버지로, 그리고 사역 계승의 동역자로서 서로의 마음을 언제라도 주고받는 이심전심의 복된 관계를 누려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보이지 못하는 속 깊은 마음을 목사님께는 제가 열어보였고 목사님께서도 저에게 지극함으로 당신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사랑의 교회 후임으로 온 후로는 멘토의 관계를 넘어 영적인 생사를 함께하는 전장에서의 동지적 관계로까지 깊어진 지난 7년이 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만큼 목사님을 더 가까이 하면서 마음과 생각을 더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35년간의 목사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목사님의 삶에서 제가 보았던 4가지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목사님의 목회의 결정체인 제자훈련에 관한 것입니다.
옥 목사님에게 제자훈련은 사역의 시작이요 끝이라고 할 수 있죠. 목사님의 제자훈련에 대한 생각의 뿌리는 1971년도부터 75년까지 서울 성도교회 대학부에서 사역하시면서 1명의 대학생이 300여명으로 부흥했던 것으로부터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한국교회는 선교단체에 젊은 대학생들을 모두 빼앗기다시피 하면서 참 교회마다 대학생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옥 목사님은 그 당시 사회의 큰 열매를 맺고 있는 선교단체들을 연구하면서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전통 기성 교회에는 부족한 3가지를 깨달으셨습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선교단체는 십자가와 복음이 살아있었고 성경 공부 훈련을 통하여 성경말씀이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원천임을 보여주었고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꿈과 비전을 키워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제자훈련의 신학적, 성경적 틀이 잡히지 않았던 극히 초보적인 단계였다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후 목사님의 유학생활 중에 교회론을 재정립하셔서 제자훈련의 성경적 이념의 틀을 갖추게 되었고 이것이 사랑의 교회에서 뿌리를 내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저희 교회 8,660여명의 사람들이 작은 예수가 되는 제자훈련의 2년 과정을 받았고 또 매년 국내외에서 열리는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 칼 세미나를 통하여 18,380여 명의 사역자들이 제자훈련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한 지역교회에서 시작한 이 세미나가 25년이 넘게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국제적으로 계속 지속 성장한 것은 유래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은혜였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제자훈련에 당신의 목회 인생 전부를 쏟으며 목회자가 제자훈련에 미쳐야 교회가 산다는 목사님의 광인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제자훈련 목회 철학은 지금도 사랑의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함께 고백하고 있는 공동체 고백의 서두에 있는 것처럼 거기에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소명 받은 제자들입니다.' 라는 고백 속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옥 목사님에게 한 사람을 예수님의 작은 제자로 삼는 제자 훈련은 세속화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영적인 무기력증의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교회의 해답이라고 봅니다. 또한 지난 백 여년 전에 서구 교회의 복음에 빚진 한국교회가 이제는 서구 세계 교회에 다시 복음의 빚을 갚는 가장 강력하고 실제적인 수단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우리 '칼 세미나', 국제 제자 훈련 지도자 세미나에 외국 목회자들을 초청하여서 제자 훈련에 눈을 뜨게 했고 작년 4월에는 세계 2위의 기독교 국가인 브라질에서 직접 제자훈련 세미나를 개최하며 제자훈련 국제화의 길을 열어나가고 있습니다. 옥 목사님은 지난 20세기 동안 수많은 선교사들의 피땀 어린 수고에 의해서 전 세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면 이제 옥 목사님의 뒤를 이은 저희 21세기 사역자들의 책임은 한 사람을 하나님의 충성된 제자로 삼는 제자 훈련의 목회 철학이 세계 교회에 뿌리내려져서 만방에 작은 예수가 벌떼처럼 일어나는 제자훈련의 국제화가 저희들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세속화의 파도를 막고 이슬람과 같은 이교도의 극렬함을 해결하며 세계 교회의 생명력을 되찾는 21세기의 종교 개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설교에 관한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선지자적 위엄과 존엄성을 드러내셨던 그의 설교이십니다. 옥한흠 목사님에게 설교는 목회자의 생명줄이었습니다. 설교를 방해하는 모든 것이 목사님에게는 불허의 대상이었습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설교의 기초를 세우고 묵상하는 시간이었는데 이것을 위해서 외부 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이요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삼가 하셨습니다. 몸이 아프시기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월요일조차 교회의 어느 직원들보다도 일찍 나와서 말씀 앞에 엎드렸습니다. 목사님께는 말씀 준비가 끝났다는 표현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그렇게 준비하고서도 때로는 주일 새벽까지 씨름을 하면서 설교 원고를 수정하셨고 또 수정하셨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말씀을 마치 쉐도우 복싱, 그림자 복싱처럼 여러 번 혼자서 설교하시면서 교우들의 귀에 제대로 들려지도록 고쳐나가셨습니다. 제가 사랑의 교회에 부임한 후에 옥한흠 목사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나누었던 주제나 관심사가 바로 설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옥 목사님과 저와의 관계는 단순히 전임과 후임의 그저 좋은 관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설교에 있어서는 목사님과 저 사이에 긴장과 치열함이 서려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주일 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후에 어떨 때 옥 목사님은 즉각적으로 혹은 다음 날 전화를 거셔서 당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시곤 하셨습니다. 사실 저의 입장에서 수 십년동안 자신의 스타일을 가지고 설교 한 목회자가 비록 애정 어린 조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설교에 대해 직접적인 충고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교회에 제가 부임한 이후로 지금까지 설교에 대한 옥한흠 목사님의 견해에 제가 마음을 열고 깊이 되새김질 하고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목사님의 불꽃같은 사랑과, 또 성도들과 교회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답으로서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말씀을 추호라도 사사로이 풀지 않는 본문에 대한 칼날 같은 엄격한 태도, 그리고 후임인 저에 대한 아낌없는 친 아버지 같은 그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제가 감사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세대계승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목사님의 목회 철학의 진면목은 세대계승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옥 목사님은 은퇴 후에 후임 목사가 교회에 뿌리를 내리는 일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세대계승의 교회사적 의미를 아셨습니다. 오늘날 영국 교회를 비롯한 유럽교회에서 젊은이가 사라지고 교회의 문을 닫고 있는 것은 복음의 건강한 세대계승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옥 목사님은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후임이 잘되고 튼실히 뿌리를 내리는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앞장서셨습니다. 제가 사랑의 교회에 부임한 지 5개월이 지났을 즈음에 옥 목사님이 교우들에게 이런 중보기도의 편지를 쓰셨습니다. '담임 목사 그는 기도해줘야 할 사람입니다.'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중의 일부분입니다. 제가 기억하기에 '우리는 담임 목사의 무거운 짐을 나눠져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저는 며칠 전부터 개인 기도를 할 때마다 적어도 하루 한 번은 저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도 후임인 오 목사에 대한 기도에 최우선을 두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가 살아야 우리 모두가 살 고 그가 승리해야 우리가 함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이 담임 목사를 위해 우선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중보기도 하는 일에 즐겁게 동참해주시기 않겠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을 향해 쓴 후임 목사를 위한 옥 목사님의 편지는 제가 사랑의 교회 2대 담임목사로서 뿌리를 내리는데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후임과 교회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편지였다고 봅니다. 언론에서 미담의 기사로 취급할 만큼 사랑의 교회에 아름다운 세대계승의 밑바닥에는 한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일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는 목사님의 헌신의 초석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진정한 복음주의자로서 옥한흠 목사님을 기리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소천이후에 저의 가슴 속에 솟구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옥 목사님의 심중에 가장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과연 무엇일까. 마지막 강단으로 알고 말씀을 전하셨다면 무엇을 가장 외치고 싶어 하셨을까. 목사님의 한 생애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이었습니다. 많은 생각의 파편들이 지나가고 스쳐가는 중에 단연히 제 마음 속에 복음, 진정한 복음주의자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기둥처럼 떠올랐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일평생 복음의 매력에 빠져서 그 복음을 심고 뿌리를 내리며 복음의 열매를 맺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쏟았던 목회자였습니다. 목사님의 사역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로마서 강해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640여 번 이상 등장하고 있는데 매년 설교하실 때마다 12번 이상 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옥 목사님은 복음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분이라고 저는 여겨집니다. 2002년 10월 초에 강단에서 선포한 '복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설교에서 목사님은 '저는 오직 교회만이, 오직 복음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펄펄 끓는 복음의 열정을 순교자처럼 외치셨습니다. 옥 목사님을 진정한 복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복음만이 교회가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믿고 한결같은 삶 전체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옥 목사님은 교회가 복음으로 세상을 바꾸는 그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복음의 제단 위에 자신의 전부를 드리셨습니다. 50대 후반에 교회갱신협의회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창립하셔서 교회가 복음으로 갱신되고 하나 되는 일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섬기셨습니다. 진정한 복음에는 죽음을 생명으로,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변화와 창조와 갱신의 포자가 가득하다고 믿습니다. 목사님은 교회가 오직 복음으로 일치와 갱신을 이루는 이것만이 옥 목사님이 그렇게 소원하셨던 교회와 개인의 세속화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복음으로 한 생애 전부를 드리셨던 옥 목사님의 외침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야한다고 봅니다. 복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우리가 바로 되면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만난 변화를 우리가 세상에 보여줄 수먼 있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이 세상을 바꿔 놓는 바로 그것이 복음입니다. 제가 옥한흠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정리한 이 네 가지는 지난 30여년이 넘게 목사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였던 저 자신은 물론이요 한국교회에 남겨진 값진 유산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옥 목사님을 부르셨고 우리들은 살아남은 자로서 해야 할 몫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는 옥 목사님께서 남기신 한 사람을 작은 예수로 삼는 제자 훈련의 정신, 선지자적인 위엄과 말씀의 존엄을 삶 전체로 보이셨던 설교자의 모습,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만이 교회와 세상의 해답임을 외치시고 그렇게 사셨던 복음의 절대 우위, 또 후임과 세대계승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으셨던 희생의 유산을 붙들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목사님이 남기신 소중한 정신을 품고 주님을 위해 일사각오로 지사충성하는 그것만이 그토록 한국 교회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쏟으신 목사님의 뜻을 누수없이 더 깊게 더 강력하게 한국 교회에 곳곳마다 펄펄 살아있게 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